► Unfixed _ artist statement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fix는 ‘고치다, 바로잡다, 해결하다’의 뜻과 함께 ‘염료나 사진 이미지 혹은 그림을 영구히 하는 행위 make (a dye, photographic image, or drawing) permanent’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흥미로운 예문도 있는데 직역하자면 ‘궁극적으로 사진의 운명은 이미지가 퇴색하거나 어둡게 변하지 않도록 정착시키는데 달려있었다 Ultimately, the fate of photography depended on fixingthe image so it would fade or darken.’
사실 사진(술)의 발명은 엄밀히 말하면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기술 혹은 프로세스의 발명이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려왔으니 사진(술)의 발명이 공인된 1837년 이래 금속판이나 유리판 혹은 종이 위에 아주 짧은 시간에, 항구적으로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기술을 찾아내는데 사활을 걸었고 단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런 기술적 비약 덕분에 사진은 인간의 사회적, 영리적, 예술적 욕망을 이루는데 충실한 역할을 수행했고 기술 발전을 다시 촉발시키는 순환으로 이어졌다. 사진 이미지의 정착은 외형적으로 기술적 프로세스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노고와 예술적 영감이 함께 녹아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180여년이 지나 사진 이미지가 은하수의 별처럼 무수히 떠다니는 지금,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정착 과정이 사라졌거나 무의미해진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 방법이 변화하고 순식간에 이뤄진다는 것 말고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애써 필름으로 찍고 현상하고, 값비싼 종이에 사진을 인화하는 번거로움 대신 거의 모든 사진 이미지는 순식간에 디지털 신호의 형식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사진을 통한 다양한 욕망도 확산되는데 고상한 예술적 가치도, 음흉한 저의도, 노골적인 상술도, 허망한 자기 과시도, 숭고한 기록도, 자랑스런 기념도 욕망을 타고 온세상을 파고든다. 갈수록 욕망은 강화되고 공공연해진다. 이런 세상에 고답적인 사진으로 고상한 척 예술적 가치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민망하다. 분명 내 사진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고 과거 사진의 방식에 집착하고 있다. 미련하게 필름으로 찍고 종이에 인화하면서 예술적 성취에 목매고 있다. 다만, 시대의 흐름을 타는 것이 예술의 한 방편이듯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도 다른방편이 될 수 있다고 위안 삼을 뿐이다.
사진 속 장면들은 특별할 것도 없지만 무릇 예술에서 개인성의 발현이 큰 몫을 하듯 이들은 나에게 각별한 순간이자 영감의 대상이었다. 바닷가 낯선 연인들의 속삭임에서 추억을 회상하거나, 어느 절간 아름드리 조팝나무와 뒷산 언덕배기 산벚이 만개하기를 꼬박 일 년을 기다리기도 했고, 집 근처를 지나는 38번 국도의 끝이 어디일까 궁금하여 차를 몰아갔다가 끊어진 길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어지러움을 느꼈던 순간도, 오래된 밥집에서 아내의 모호한 다짐의 순간이나 초상처럼 찍어뒀던 건물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허망함도 내겐 모두 각별했다.
나는 그 대상들을 곱씹으며 한 치라도 더 생생하게 붙들기 위해 어두침침한 암실에서 무던히 애썼다. 안타깝게도 그 덧없는 존재와 스러져간 순간들은 어느 예술가의 순진한 연민과 예술적 욕망의 교차점에서 붙들린 채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어쩌면 나의 사진은 애도이며 조사일지도 모르겠다 _ 김진호